원화 스테이블코인 전쟁 중에, 한국 금융사들은 달러 OUSD에 줄을 섰다
Open USD(OUSD) 한국 참여자 명단이 드러내는 두 개의 트랙
한국 금융사들은 국내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도권을 놓고 격렬하게 싸우는 중이다. 그런데 같은 시기, 그 싸움의 당사자들이 달러 스테이블코인 Open USD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모순이 아니다. 원화는 발행자가 되려는 게임이고, 달러는 발행 부담을 지지 않고 정산 비용 절감과 준비금 수익 공유에 접근하려는 게임이다. 두 트랙은 목적이 다르다.
두 개의 명단이 겹친다
2026년 6월 30일, Open Standard라는 회사가 달러 스테이블코인 Open USD를 발표했다. Visa, Mastercard, Stripe, BlackRock, Coinbase 등 140개 이상의 기업이 파트너로 참여했고, 발표 당일 기존 달러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Circle의 주가(CRCL)는 급락했다. 시장은 이것을 USDC의 경쟁자로 읽었다.
한국 관점에서 눈에 띄는 것은 참여자 명단이다. 국내 주요 카드사가 대거 들어가 있다. KB국민카드, 우리카드, 삼성카드, 하나카드, 현대카드, BC카드, 농협카드까지 일곱 곳이다. 여기에 신한금융, 케이뱅크, 카카오뱅크, 한화생명, 삼성전자, 그리고 두나무가 더해진다.
이 이름들이 낯설지 않은 이유가 있다. 지금 한국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주도권을 놓고 진영을 나눠 싸우고 있는 바로 그 플레이어들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발행권을 놓고 서로를 견제하는 신한과 KB, 카드사들, 그리고 두나무가, 달러 Open USD에는 한 명단 안에 나란히 서 있다. 이 겹침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같은 회사가 왜 한쪽에서는 싸우고, 다른 쪽에서는 협력하는가. 미리 짚어둘 것이 있다.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과 실제로 온체인 정산을 도입하는 것은 다르다. 지금 확인되는 것은 실행이 아니라 옵션 확보다. 그러나 옵션도 전략이다.
Open USD가 파는 것은 ‘발행자가 되지 않을 자유’다
답을 찾으려면 Open USD가 무엇을 파는지부터 봐야 한다. Open USD는 세 가지 설계 원칙을 내세운다. 첫째, 기업은 수수료 없이, 물량 제한 없이 Open USD를 발행(mint)하고 상환(redeem)할 수 있다. 둘째, 준비금에서 나오는 수익을 발행사가 아니라 파트너가 가져간다(earn by default). 운영비 명목의 소액 관리 수수료만 제외된다. 셋째, 단일 기업이 아니라 파트너들로 구성된 이사회가 운영한다.
두 번째 원칙이 핵심이다. 기존 달러 스테이블코인 구조에서는 준비금 운용 수익이 대부분 발행사(Circle 등)에 귀속된다. 스테이블코인 사업의 진짜 돈은 여기서 나온다. 예치된 달러를 미국 국채 등에 굴려 얻는 이자다. Open USD는 이 수익을 사용하는 기업에게 돌려주겠다고 한다. 다만 이 수익은 미국 단기금리에 직접 연동된다. 지금 같은 고금리 환경에서는 매력적이지만, 금리가 낮아지면 준비금 수익 공유라는 매력도 함께 약해진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한국 금융사 입장에서 이 제안의 의미는 분명하다. 발행자가 되지 않고도 발행자의 경제적 이익 일부를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을 직접 발행하려면 발행 라이선스, 준비금 확보와 관리, 상환 보장, 규제 승인, 그리고 사고가 났을 때의 책임까지 전부 떠안아야 한다. Open USD 파트너가 되면 이 부담을 지지 않으면서 준비금 수익과 저비용 정산 레일에 접근한다. 발행사 수준의 부담은 직접 지지 않으면서, 파트너는 사용자 겸 수익 배분 대상으로 참여한다.
원화 전쟁은 ‘발행자 되기’ 게임이다
이 구조가 왜 매력적인지는, 국내 원화 스테이블코인 경쟁이 정확히 그 반대 방향이라는 점을 보면 드러난다. 국내 경쟁은 처음부터 끝까지 “누가 발행자가 되느냐”의 싸움이다.
2026년 상반기 구도를 보면 진영이 선명하다. 하나금융은 BNK금융, iM뱅크, SC제일은행, OK저축은행, JB금융 등을 묶어 은행 기준 여섯 곳 규모의 컨소시엄을 선점했고, 두나무 지분을 약 1조원에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여기에 업비트와 네이버페이가 결합하면 국내 최대 규모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에 맞서 KB금융은 토스와 손잡는 구상을 추진하며 신한금융, IBK기업은행, 부산은행, 경남은행 등과 간담회를 열었다. 하나 독주를 견제하는 결집이다. 카드사들은 별도 TF를 가동해 신한카드와 KB국민카드가 결제 인프라 주도권을 놓고 속도전을 벌였다.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걸어야 할 것이 많다. 발행 라이선스를 확보해야 하고, 준비금 설계를 놓고 한국은행의 통화안정증권 기반 준비금 요구를 받아들일지 다퉈야 하며, 통화주권과 자본 유출을 우려하는 규제당국을 설득해야 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자가 된다는 것은 float(예치금 운용 수익)와 국내 결제·정산 인프라의 주도권을 쥔다는 뜻이지만, 그 자리를 얻기까지 규제와 명분과 자본을 모두 소진해야 하는 소모전이다.
두 트랙은 목적이 다르다
여기서 두 명단이 겹치는 이유가 풀린다. 원화와 달러는 애초에 다른 문제를 푼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국내 규제권 안에서 원화로 표시된 가치를 정산하는 인프라의 주도권 문제다. 이것은 통화주권과 국내 결제망이 걸린 영역이라, 발행자가 누구냐가 결정적이다. 그래서 직접 발행자가 되려고 싸운다. 반면 달러 Open USD는 글로벌 정산 네트워크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한 참여의 문제다. Visa, Mastercard, Stripe가 참여하는 새 달러 정산 레일이 실제로 깔린다면, 한국 금융사는 그 위에 있어야 한다. 여기서는 발행자가 될 이유도 없고 될 수도 없다. 달러 발행은 한국 규제 밖의 일이다. 사용자 겸 파트너로 참여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다.
이 구분은 새로운 통찰이 아니다. 한국의 스테이블코인 수요가 하나가 아니라 최소 두 갈래, 즉 달러 접근과 글로벌 유동성 수요, 그리고 원화 표시 가치의 국내 정산 수요로 나뉜다는 점은 이미 관측돼 왔다. 이번 Open USD 명단은 그 두 수요가 기업 차원의 전략으로 구현된 모습이다. 한국 금융사는 원화 트랙에서는 발행자 자리를 놓고 싸우고, 달러 트랙에서는 글로벌 정산망의 좌석을 확보한다. 하나의 회사가 두 트랙에 동시에 베팅하는 것은 모순이 아니라 합리적 분업이다.
카드사 일곱 곳이 유독 전면에 선 이유
참여자 중 카드사의 밀도가 특히 높다는 점은 따로 볼 가치가 있다. 국내 주요 카드사 일곱 곳이 이름을 올렸다는 것은 단순한 관심 표명으로 보기 어렵다.
카드사가 가장 아픈 지점은 해외 결제 정산이다. 지금 구조에서 국내 소비자의 해외 카드 결제는 카드사에서 Visa 또는 Mastercard 네트워크를 거쳐 해외 매입 은행으로, 다시 최종 정산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인터체인지 수수료, 환전 비용, 그리고 T+2에서 T+3에 이르는 정산 지연이 발생한다. Open USD는 이 중간 단계를 압축할 수 있는 레일이다.
주목할 점은 Visa와 Mastercard가 Open USD에 동시에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카드 네트워크를 대체하겠다는 신호가 아니라, 정산 레이어를 통합하겠다는 신호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소비자가 만지는 표면(카드 UX)은 그대로 두고, 뒤에서 돌아가는 정산만 스테이블코인 레일로 옮기는 구조가 가장 현실적이다. 카드사 입장에서는 네트워크가 이미 그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혼자 빠지면 정산 비용 경쟁에서 뒤처진다. 일곱 곳이 전부 들어간 것은 방어적 포지셔닝의 성격이 강하다.
BC카드의 참여는 층위가 다르다. BC카드는 단순 카드사가 아니라 다수 은행의 카드 결제를 처리하는 네트워크 사업자다. 개별 카드사가 참여하는 것과 결제 네트워크 사업자가 참여하는 것은 통합의 깊이가 다르다. 다만 이 잠재력이 실현되려면 규제라는 문턱을 넘어야 한다.
비판적 시각: 한국은행의 악몽 시나리오
여기서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지금 확인된 것은 참여 의향 수준이다. Open USD 자체가 “연내 출시(live later this year)”를 목표로 하는 단계이고, 한국 금융사들의 이름이 명단에 있다는 것이 곧 실제 온체인 정산 사용을 뜻하지는 않는다.
가장 큰 벽은 규제다.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한 국경 간 자금 이동은 외국환거래법 이슈를 직접 건드린다. 2026년 시행된 국경 간 크립토 이전 등록 요건도 걸린다. 무엇보다 이 시나리오는 한국은행이 가장 두려워하는 그림에 가깝다. 이창용 총재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해외 반출로 인한 자본 유출을 우려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Open USD는 원화 유출을 넘어, 한국 금융사가 달러 스테이블코인 레일에 직접 올라타는 구조다. 국내 결제와 정산의 상당 부분이 국내외 관할권이 분산되는 달러 레일 위에서 돌아가는 상황은, 통화주권 관점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해외 반출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다.
따라서 실제 상륙은 국내 리테일보다 우회 경로에서 먼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카드사의 해외 법인, 글로벌 파트너십, B2B 크로스보더 정산처럼 국내 외국환 규제를 정면으로 건드리지 않는 영역이 먼저다. 국내 소비자가 Open USD로 결제하는 그림은 가장 나중에, 그것도 규제가 명시적으로 허용할 때에만 온다.
결론: 이중 베팅
한국 금융사들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이중 베팅이다. 원화 트랙에서는 발행자 주도권을 놓고 국내에서 싸우고, 달러 트랙에서는 글로벌 정산망의 좌석을 확보한다. 원화는 명분과 주도권의 게임이고, 달러는 실리와 배제 방지의 게임이다. 두 베팅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겨냥하는 시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관건은 규제당국이 이 두 트랙을 어떻게 볼 것인가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만 국내 사안으로 다루고 달러 스테이블코인 참여를 별개로 방치하면, 한국은 원화 발행권 싸움에서 이기고도 실제 정산 인프라는 달러 레일에 내주는 결과를 맞을 수 있다. 반대로 두 트랙을 하나의 통화주권 문제로 묶어 접근하면, Open USD 참여 자체가 규제 쟁점이 된다. 78.4%의 스테이블코인 사용률이 원화 결제 수요가 아니었던 것처럼, 이번 명단도 한국 금융의 스테이블코인 전략을 보여주는 것이지 원화 코인의 승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두 트랙을 구분하는 데서 논의가 출발해야 한다.
데이터 출처: joinopenstandard.com(Open USD 발표문 및 파트너 명단, 2026-06-30), CoinDesk(2026-06-30, Circle 주가 반응), The Defiant, 인베스트조선(2026-01-26, 하나금융 컨소시엄), 헤럴드경제(원화 스테이블코인 컨소시엄 구도), 다음 뉴스(2026-04-09, 카드사 코인 결제 신한·KB 속도전). 국내 원화 스테이블코인 진영 구도 및 한국은행 입장은 앞선 한국 블록체인 2026 및 원화 스테이블코인 시장 분석 노트와 대조해 정리했다. 본 글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자문이 아니다.


